지구상에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있는 생일,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도 생일이 있다! 4월 22일은 지구의 생일인 ‘지구의 날’이다. ‘지구의 날’은 물리학자나 우주생물학자가 아닌 지구의 건강을 걱정한 시민들이 정한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원유 시추 작업 중 원유 10만배럴이 해상에 유출돼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위스콘신주의 상원의원이었던 게이로드 넬슨은 베트남 반전 운동의 열기와 여성·환경·인종 등 신좌파 운동의 등장에 영감을 받았다. 그는 원유 유출 사고를 비롯해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조직적으로 대응해 정치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원유 유출 사고를 통해 환경의식을 갖게 된 하버드 대학생 데니스 헤이즈와 함께 ‘지구의 날’을 선포하고 캠페인을 열게 된다. 놀랍게도 첫 ‘지구의 날’ 행사에는 무려 2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연설을 듣고 토론회를 개최하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실천에 동참했다. 뉴욕 5번가에서는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됐고, 60만명 이상이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환경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원유 유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공장과 발전소, 농약과 유해물질, 쓰레기 문제, 종 다양성 위기 등 다양한 의제를 활발하게 드러냈다. 1972년에는 113개국 대표가 스웨덴 스톡홀름에 모여 ‘지구는 하나’라는 주제로 ‘인간환경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첫 캠페인 이후 ‘지구의 날’은 맥이 끊겼다가 기후변화의 피해가 코앞에 닥치자 다시 소환된다. 1990년에 열린 제2회 ‘지구의 날’에는 141개 나라에서 2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참해 환경오염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조직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192개 나라, 약 5만개의 단체가 ‘지구의 날’에 참여하고 있다. ‘지구의 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과 달리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환경의 날이다. 매해 하나의 슬로건 아래 지구가 봉착한 문제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알리고 실천을 독려한다. 도로에서 차를 막아 시민들이 마음껏 활보하도록 하고, 곳곳에 나무를 심고 쓰레기를 줍고 신재생에너지를 독려하는 등 지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환경 파티를 연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 내 생각에 지구의 면역체계는 에이즈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걸세. 하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것 같아.”라고 썼다. 커트 보니것이 지금까지 살았더라면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 등을 추가했을 테다. 우리는 점점 더 나빠지는 지구의 건강과 그로 인해 영향 받는 우리네 건강을 걱정한다. 그의 말처럼 애석하게도 뭘 해도 이미 늦은 걸까?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절망은 그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희망은 대책 없이 낭만적인 낙관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미래를 믿으며 자기 자리에서 실천을 반복할 때 생겨난다. 희망의 문법은 실천과 연대를 계속하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과연 해결이 될까, 라고 묻는 친구에게 교과서에서 읽었던 ‘런던 스모그’ 이야기를 했다. 산업화 시대 초기보다 현재의 공기 질이 훨씬 낫다. 휘발유에 사용하던 납을 금지해 무연 휘발유를 사용한 결과 공기 중 납 수치가 확 떨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매일매일을 지구의 생일인 ‘지구의 날’로 여기고 각자의 처지에서 가능한 환경 실천을 해보자. Every day is Earth Day.